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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4 09:35

체스와 IT 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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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는 빌 게이츠보다 저커버그가 한수위?

…체스판앞에 앉은 IT부호들

 

 

2014.12.03.

 

[특별취재팀=김현일 기자]

 

동양의 바둑만큼 서양에선 체스도 해외 슈퍼리치들이 즐기는 취미활동 중 하나다. 자신의 회사를 경영하며 막대한 부를 쌓아 올렸지만 이들의 눈앞엔 오늘도 라이벌 기업들과의 힘겨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고심하는 슈퍼리치들의 모습은 체스판 앞에 앉아 누가 이길지 모르는 게임을 하는 선수들과 닮아 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의 IT 부호들 중에는 체스 마니아가 적지 않다. 이들 중에는 체스선수 출신의 기업인도 있고, 체스 세계 챔피언을 따로 불러 교습을 받는 이들도 있다. 혹은 체스의 저변 확대를 바라며 기부를 할 정도로 체스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부자들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 빌 게이츠(Bill Gatesㆍ자산 818억달러)와 폴 앨런(Paul Allenㆍ자산 171억달러)은 지금은 사이가 멀어졌지만 한때 체스판을 사이에 두고 함께 게임을 즐겼던 사이였다. 특히 폴 앨런은 교육 관련 랭킹정보를 제공하는 단체 ‘슈퍼스칼라(SuperScholar)’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10인’에 뽑히기도 했는데 그만큼 체스 실력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빌 게이츠도 체스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단연 그의 기부에서 드러난다. 시애틀 출신인 그는 고향에 있는 한 체스재단(Chess Mates Foundation)에 1999년부터 약 1만달러씩 기부를 해왔다. 시애틀 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체스를 보다 자주 접할 수 있기를 바라며 시작한 선행이었다. ‘머리를 쓰는 스포츠’로 분류되는 체스게임은 학습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돼 아이들에게 권장되는 ‘놀이’이기도 하다.

 

빌 게이츠의 ‘체스 사랑’은 국경을 넘어 우간다 소녀에게까지 닿았다. 2012년 16세의 나이로 체스 올림피아드에 우간다 대표로 출전해 예비 마스터 격인 WCM(Woman Candidate Master) 타이틀을 획득한 피오나 므테시(Phiona Mutesi)가 바로 그 대상이다. 빈민가에서 자라 오직 먹고 살기 위해 체스를 시작한 ‘우간다 체스소녀’의 이야기는 책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화제였다. 체스 마니아이자 기부왕인 빌 게이츠도 이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므테시가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항공비를 지원하고, 빌&멜린다 게이츠재단에 초대하는 등 후원에 나섰다.

 

 

 

 

  올 1월 2014 세계 체스 챔피언 망누스 칼센과 체스시합에 나선 빌 게이츠

 

올 1월에는 직접 체스판 앞에 앉아 대국을 펼치는 ‘선수’ 빌 게이츠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는 스웨덴-노르웨이 방송사가 공동제작하는 한 TV쇼에 출연해 체스게임을 가졌다. 상대는 2014 세계 체스 챔피언 망누스 칼센(Magnus Carlsenㆍ노르웨이)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59세 남자와 세계에서 가장 체스를 잘 두는 24세 청년이 벌이는 이 ‘한 판’에 이목이 집중됐지만 게임은 71초 만에 칼센의 승리로 끝났다.

 

칼센은 게임이 끝나고 “체스 실력은 저커버그가 빌 게이츠보다 낫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는데 실제로 칼센은 빌 게이츠와의 대결을 1주일 앞두고 실리콘밸리에서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자산 331억 달러)를 만났다. 저커버그는 이 자리에서 칼슨과 대결이 아닌 ‘특훈’을 택했다. 칼슨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커버그와 일대일 체스 교습 중인 사진을 올리며 “(저커버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습득한다. 그가 페이스북에 몸담고 있어 다행이다”는 재치 있는 글을 남겼다.

 

 

 

 

세계 챔피언 망누스 칼센으로부터 체스를 배우고있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사진=망누스 칼센 페이스북)

 

저커버그는 2012년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Y 콤비네이터 스타트업(Y Combinator Startup)’ 이벤트에서 “젊은 사람들은 정말 똑똑하다. 대부분의 체스 챔피언들이 서른 살 아래인 것만 봐도 그렇다”며 체스선수들의 재능에 강한 동경을 드러냈다.

 

사실 저커버그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직원들 다수가 체스를 즐긴다는 사실이 미국 CBS 보도프로그램 ‘60분’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방송에는 페이스북 연구원들이 휴식시간에 빠른 속도로 체스를 두는 모습이 담겼다.

 

13세 때 체스 마스터를 제압해 화제가 됐던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 왈도 세브린


페이스북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왈도 세브린(Eduardo Saverinㆍ자산 47억달러)도 어린 시절부터 체스를 잘 두는 수학 천재로 유명했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10대를 보내며 체스를 마스터한 세브린은 페이스북 창업자라는 타이틀을 달기 전인 13세에 이미 세계 언론에 데뷔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올랜도에서 열린 체스 게임에서 세브린이 체스 그랜드마스터(국제체스연맹이 체스선수에게 부여하는 최상위 칭호)를 제압한 사실이 국제 체스잡지(International Chess Magazine)에 ‘있을 수 없는 사건’으로 소개됐다. 당시 13살 세브린은 마지막 한 수를 두기 전 엄마를 태연히 바라보며 “내가 이겨도 괜찮을까요?”고 물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쯤 되면 ‘페이스북에 입사하려면 체스는 기본’이라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챔피언 칼센과 마주앉아 체스를 둔 이들 중에는 피터 틸(Peter Thielㆍ자산 21억달러)도 있다. 엘론 머스크와 함께 온라인 결제서비스 페이팔(Paypal)을 창업한 그도 한때 촉망받던 ‘체스 꿈나무’였다. 틸은 미국에서 공인한 체스 마스터로, 체스DB 닷컴에는 지금도 그의 국내 랭킹이 300위인 것으로 나와 있다.

 

체스선수 출신 피터 틸 페이팔 공동 창업자


틸은 6세 때 체스를 시작했으며 12세 때까지 13세 이하 유소년 랭킹 7위에 올라 있었다. 당시 그가 들고 다니던 체스판에는 ‘승리를 위해 태어나다(Born to Win)’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있어 틸의 강한 승부욕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무대’를 떠났지만 자신이 운영하는 투자회사에 체스선수 출신 인사를 채용할 정도로 체스 선수들의 ‘두뇌’를 높이 평가한다. 2005년 체스 챔피언 2회 경력의 패트릭 울프(Patrick Wolff)를 애널리스트로 고용했을 정도다. 틸은 지금도 여전히 인터넷으로 블리츠 체스(blitz chessㆍ5분짜리 체스게임)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소프트웨어업체 팰런티어 테크놀로지(Palantir Technologies)의 회장이자 페이스북 이사진에 앉아 있다.

온라인 옥션사이트 이베이(ebay)의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야르(Pierre Omidyarㆍ자산 80억 달러)도 소문난 체스게임 광(狂)이다. 오미디야르는 체스를 즐기는 수준을 넘어 ‘연구’하는 자세로 접근한다. 그가 초창기 개발한 웹 기반의 프로그램들 중 하나가 바로 ‘Chess-by-Mail’ 서비스였다. 오미디야르는 이를 인터넷으로 무료 제공한 바 있다.

 


 

 

 

 


그밖에 페이스북과 트위터, 그루폰 등의 투자자로 유명한 유리 밀너(Yuri Milnerㆍ자산 18억 달러) 디지털스카이테크놀로지 CEO와 오라클(Oracle) 창업자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ㆍ자산 525억달러)도 체스게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모스크바대에서 입자물리학을 공부했던 유리 밀너는 두 딸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매일 아침마다 수학과 체스를 직접 가르칠 정도로 체스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와 체스 챔피언 망누스 칼센 간의 만남을 주관한 것도 바로 유리 밀너였다. 

joz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