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에 충격의 3연패를 당했다.
12일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포시즌스호텔 서울 특별대국실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제3국에서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에 176수 만에 흑 불계패했다. 9일과 10일 열린 1, 2국에서 불계패했던 이세돌 9단은 3국에서도 반격에 실패하며 100만 달러의 우승상금은 ‘알파고’에게 돌아갔다. 이세돌 9단이 1승을 거둘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4국은 13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2국을 마치고 동료 기사인 박정상ㆍ홍민표 9단 등과 밤을 새우며 ‘알파고’를 분석했던 이세돌 9단은 초반부터 전투적으로 ‘알파고’를 밀어붙였다.
이세돌 9단의 바둑을 현장에서 공개 해설한 이현욱 8단은 “이9단이 초중반 승부를 보겠다는 각오로 전투적으로 임했지만 때 이르게 불리해졌다”면서 “후반 백진에 침투해 수를 내는데까지 성공했지만 팻감 부족으로 역전에 이르지 못했다”고 평했다. 이8단은 “수가 나지 않는 자리에서 수가 난 것이 미스터리지만 ‘알파고’는 패싸움도 능숙하게 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동등한 조건일 경우 누가 둬도 50%의 승률을 올리기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각자 2시간에 1분 초읽기 3회씩의 제한시간이 주어진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는 중국룰을 채택해 덤 3 3/4자(7집반)가 주어졌다. 모든 대국은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로 생중계됐으며 바둑TV와 사이버오로에서도 생중계했다.
특히 바둑인들의 예상을 뒤엎고 인공지능이 연거푸 승리하자 언론의 관심도 엄청나, KBS와 TV조선, JTBC3는 대국 생중계를, YTN 등에서는 실시간으로 바둑 소식을 전하며 현장의 열기를 속보로 전달했고 광화문 프레스센터의 옥외 모니터에서는 바둑TV가 중계하는 화면을 내보내기도 했다.
또한 CCTV, NHK 등 외신들도 실시간으로 대국 결과를 본국에 전하며 인간과 인공지능의 역사적인 대결에 뜨거운 관심을 표했다.
▲광화문 프레스센터 옥외 모니터에서 바둑TV가 중계하는 화면을 받아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제3국을 생중계하고 있다
‘알파고’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이번 대회의 우승상금은 100만 달러(환율 고정 11억원)다. 구글은 이번 우승상금을 유니세프(UNICEF)와 STEM(과학ㆍ기술ㆍ공학 및 수학) 교육 및 바둑 관련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
이세돌 9단에게는 다섯 판의 대국료 15만 달러(1억 6500만원)가 주어지며 판당 승리 수당 2만 달러는 별도로 책정돼 있다.
구글이 2014년 인수한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분야 기업인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는 지난 1월 28일 과학 기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 최초로 프로바둑 선수와의 대국에서 호선에 승리한 컴퓨터 프로그램인 ‘알파고’를 최초로 공개했다. ‘알파고’는 최첨단 트리 탐색과 두 개의 심층 신경망을 결합해 사람과 비슷한 방식으로 바둑 경기를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세돌 9단이 3국 직전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CEO(왼쪽)와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 알파벳 사장(오른쪽)과 함께 했다
※다음은 경기 후 프레스 브리핑입니다.
세르게이 브린 ‘알파벳’ 사장
구글 창업 동기 레리 페이지에게 바둑을 많이 둬서 창업을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불평을 들었지만 바둑을 잘 못 둬 다행이었다. 바둑은 미학적인 게임이다. 체스보다 인간의 삶을 배우게 하는 게임이어서 최고의 기사가 두는 바둑을 보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바둑의 아름다움을 접목시킬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오늘 최고의 기사와 구글 딥마인드 팀원과 같이 있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데미스 하사비스 ‘딥마인드’ CEO
다시 한번 이세돌에게 감사하며 한국기원에도 감사한다. 솔직히 저희도 할 말을 잃을 만큼 놀랐다. 하변의 큰 영토에서 패를 활용한 전투가 진행됐다. 알파고는 초당 수 만개의 경우의 수를 연산했지만 이세돌은 혼자 두뇌의 힘으로 세 차례 모두 접전을 펼쳤다. 알파고 딥마인드 팀의 노고와 천재성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아직 두 번의 대국이 남았다.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더 많은 감회를 밝히고 싶다. 우리는 더 큰 그림을 그리려고 하니 지켜봐 달라. 알파고는 이세돌에게 창의력과 천재성을 배우고 싶어 이번 경기를 펼쳤다. 알파고 개발은 범용적 인공지능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회가 직면한 난제를 기술적으로 풀어 사회의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알파고의 단점이 있느냐는 질문에)기보를 분석할 시간이 없었고 진행에 집중해 알파고의 단점은 이 경기가 모두 끝나고 돌아가서 분석할 것이다. 2국을 봐서는 확실히 단점이 있는 것 같다.
마이클 레드먼드 9단
알파고의 초반에 의구심을 가졌던 분들도 3국이 끝나고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3국은 이세돌 9단의 기풍대로 진행됐고 알파고도 패를 쓸 줄 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바둑의 역사를 보면 새로운 이론과 역사가 이뤄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알파고는 혁신적인 수를 뒀다. 새로운 수, 새로운 포석으로 바둑의 ‘3차 혁명’을 만들어 낸 알파고 개발팀에 찬사를 보낸다.
이세돌 9단
내용과 결과 모두 무력한 모습을 보여 죄송하다. 결과적으로 1국은 승리하기 어려웠다. 알파고의 능력을 오판했다. 승부는 2국에서 난 것 같다. 초반 의도대로 흘렀지만 기회를 많이 놓쳤다. 3국은 바둑적 경험이 많은 저도 심한 압박감과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걸 이겨내기엔 능력이 부쳤다. 세 판을 졌기 때문에 승패는 갈렸지만 심리적인 부분을 던 만큼 4, 5국이 더 정확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바둑을 둬서 압박감을 느낀 것은 없다. 한국이라 오히려 더 편했다. 사람과 사람의 대결이라면 2-0으로 밀린다 해도 스트레스를 안 받겠지만 알파고는 새로운 경험이었기에 허무하게 마지막을 내주지 않았나 싶다.
▲경기 후 동료들과 복기 중인 이세돌 9단. 왼쪽부터 한종진 9단, 기사회장 양건 9단, 이현욱 8단